내 몸에 맞는 숫자를 찾는 하루 – 양복 사이즈, 끝까지 맞춰보기

여자들이야 몸에 잘 맞는 옷을 동물적으로 잘 고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남자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캐주얼이 아닌 양복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에 꼭 맞는 양복 사이즈를 입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의 미션은 내게 꼭 맞는 양복 사이즈를 찾아내는 것.
오늘 하루는 백화점에서 보내기로 하자. 오늘 하루 양복 사이즈를 잘 찾아낸다면 이후에는 고생이 덜하다. 딱 하루만 힘든 쇼핑을 허락하자. 양복 사이즈를 찾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가장 아끼는 양복을 입고 백화점을 방문할 것. 반드시 셔츠와 구두를 신고 가장 몸에 잘 맞는 양복을 입고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대개 점원은 손님이 입고 있는 옷과 가장 비슷한 옷을 추천한다.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다고 판단하면, 유사한 스타일을 추천해 구매 성사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두를 신고 그리고 와이셔츠를 입고 가지 않는 경우 옷을 구매할 때는 딱 맞는 사이즈였으나 다음 날 출근할 때 착용하면 옷이 길거나 큰 경우도 많다. 그러니 반드시 구두를 신고 와이셔츠를 입고서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매장을 방문해서 주의할 점은 절대 오늘 하루는 점원의 말을 믿지 말 것이다. 대개 점원은 옷이 딱 맞지 않더라도 잘 어울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니 오늘 하루 만큼은 스스로의 주관으로 옷의 사이즈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 전에는 어떤 의사결정도 하지 말 것. 백화점 모든 매장을 방문하여 착용을 해 본 후 의사결정을 할 것. 긴 여정이다.
먼저 자신의 신체지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이즈를 선택한다. 가슴둘레, 허리둘레, 키만을 기준으로 기준 옷을 선택하라. 나의 경우 100-88-175라는 사이즈를 기억한다. 이 때 세 개의 기준 숫자 중 어느 하나의 숫자가 조금 어긋나도 양복을 착용했을 경우 잘 맞아 보인다. 예를 들어 100-86-175이거나 100-88-177인 경우에도 대부분 몸에 잘 맞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반드시 이 사이즈가 내게 맞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가슴 단추를 잠근 후 주먹을 쥐어 가슴과 옷 사이로 밀어 넣어 보라.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빈틈이 있다면 허리 둘레는 잘 맞는 사이즈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남성의 경우 자신에게 잘 맞는 옷보다 한 치수 큰 옷을 입는 경향이 있다. 주먹이 여유 있게 오갈 수 있다면 조금 큰 옷이 아닌지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양복 재킷의 길이도 마찬가지로 검증이 필수. 재킷의 끝 단이 엉덩이 뒤의 살이 접히는 부분까지 와 있다면 맞는 사이즈이다. 디자인에 따라 그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 있거나 아래로 내려와 있어도 괜찮다. 양복 소매의 길이는 와이셔츠 단이 약 1.5cm 정도 보일 정도면 최적의 길이이다. 대부분 와이셔츠 끝이 보이지 않도록 긴 길이를 유지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와이셔츠 길이보다 조금은 짧은 듯한 사이즈가 정상이다.
자, 그럼 내 몸에 꼭 맞는 사이즈를 결정했는가? 몸에 맞는 사이즈를 찾았다면 이제 그 숫자를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경우 100-88-175라고 외운다. 이 숫자는 중요하다. 다음 매장을 방문했을 때 이제는 100-88-175 사이즈를 찾고 혹시 그 사이즈의 옷이 없다면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점원은 그보다 세 개의 숫자 중 두 개의 숫자가 일치하는 옷을 추천하고 “일단 입어보라”고 말할 것이다.
내게 꼭 맞는 수치를 찾았음에도 매장을 계속 방문할 필요가 있다. 수치는 찾았으나 여전히 내 몸에 딱 들어맞는 양복을 결정하지 못했다. 같은 치수라도 브랜드에 따라 조그마한 차이가 있다. 소매나 품, 길이 등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내 치수에 해당하더라도 실제 착용감을 꼭 비교해봐야 한다. 여러 브랜드 중 어느 하나가 체형에 완벽하게 맞는다면, 그 브랜드를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내게 꼭 맞는 브랜드를 찾는 데는 하루가 걸릴 수도 있지만, 한 번 찾고 나면 그 뒤로는 쇼핑이 단순해진다. 디자인만 고르고 치수를 말하면 끝이니까 말이다. 내 경우 전 매장을 다 다녀봐도 딱 하나밖에 없었다.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바지 길이. 대부분 양복을 입는 남자들의 바지길이는 국제 표준 대비 매우 긴 편이다. 정확한 기준은 구두 굽의 윗선이며, 바지 단은 그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야 한다. 많은 경우 구두 굽 아랫선에 맞추거나 구두 굽 중심선 정도에 바지 길이를 결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길다. 조금 짧은 바지 길이처럼 느낄 때가 제일 맞는 편이다.
오늘 하루는 까칠한 고객이 돼보는 것이다. 지금 설명한 정확한 양복의 치수를 고르는 방법은 대부분의 점원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까지 그렇게 추천하지 않았을까? 표준에 따라 옷 사이즈를 고르지 않고, 평균적인 고객의 취향에 따라 큰 사이즈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양복 사이즈를 결정할 때 조금만 까다롭게 굴면 점원들의 태도도 확 달라진다. “이 사람은 표준에 따라 옷을 입는구나.” 라고 깨닫고 옷을 추천하는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내게 꼭 맞는 양복 사이즈 고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모든 매장을 방문하여 내게 맞는 브랜드를 찾을 때까지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한 번만 이렇게 튜닝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양복 쇼핑이 아주 쉬어진다. 해당하는 브랜드의 매장을 방문하고 디자인을 결정한 후 해당 사이즈를 불러 주면 된다. 이제부터는 쇼핑하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딱 하루만 고생하자. 내게 꼭 맞는 양복 사이즈를 찾아내고 신사가 될 때까지.
Summary
정장 사이즈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나에게 꼭 맞는 핏을 찾기 위한 치밀한 탐색의 결과다. 하루를 투자해 구두와 셔츠까지 갖춰 입고, 점원의 추천이 아닌 내 기준으로 수트 핏을 검증하는 과정은 혼자놀기의 또 다른 몰입이다. 사이즈를 외우고 브랜드를 확정하면 이후 쇼핑은 빠르고 간결해진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트를 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