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로 찾는 마음의 평정 – 인생의 파편을 정돈하는 시간

어딘가 훌쩍 떠나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TV를 보면서 방콕~ 하기에는 약 오르는 한 두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평소에 하지 않았으나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는 해야 할 일처럼 묵혀둔 일이 있다면? 마치 쌓아 둔 빨래더미처럼 날 잡아 해야 할 일이라고 미루어 둔 일을 찾아본다면?
그 건 책장을 정리하는 일이다. 책이 많거나 혹은 적거나 책장을 정리하는 일은 아주 꼼꼼하고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 보아도 지저분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책장을 정리하는 날로 시간을 보내보자. 책장을 정리하는 일은 잠깐이나마 집중할 수 있고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 스트레스 해소와 마음의 평정을 찾는 데 제격이다.
벽 한 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장이라면 사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버릴 책을 골라 내는 작업이다. 책을 버리는 일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일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책을 내 손으로 정리해고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책장에도 신진세력이 들어와야 활기가 솟고 에너지가 넘친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는 풍수지리와도 관계가 깊다.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해야 할 대상은 시간이 지나 낡아 버린 책들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책. 예를 들어 [2010년 경제 대 전망]과 같은 책은 이미 지난 과거를 예견한 책이다. Y2K를 대비하자고 발간된 1999년의 책이 있다면 역시 유효기간이 지난 도서들이다.
혹은 사라져 버린 주제에 관한 책들도 아쉽지만 대상이 된다. [윈도우 2000 대 해부]나 [로터스 1-2-3 익히기]와 같은 컴퓨터 관련 서적 역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책장의 자리를 물려 줘야 할 대상자, 아니 대상서이다. 더욱이 컴퓨터와 관련된 도서는 뚱뚱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어 하나를 정리하면 둘을 채워 놓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다음은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책장의 조직도를 전면 재 검토하는 일은 대규모 작업이다. 하루 꼬박 날을 세울 작정이 아니라면 이 방법은 피하자. 대신 소폭의 개각을 단행하자. 한 주제에 가장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나 고르자.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기획서 작성에 관련된 책이 많은 편이다. 기획서 관련 책들을 같은 책장의 한 칸에 하나씩 하나씩 옮겨 놓는다. 그 자리에 다른 주제의 책이 있다면 그 책은 비슷한 주제의 책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다. 기획 관련 책은 한 자리로 모이게 되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주제의 책은 가장 비슷한 특성을 가진 동료의 옆으로 이동하게 된다.
하나의 주제가 정리되었으면 이제 다른 주제 한 두 가지를 더 선정하여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동한다. 어느 경우는 한 쪽에 같은 주제의 책이 몰려 들어 자리를 넓혀 줘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동료가 없어 제 자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게 책장 정리의 묘미이다. 책장에 빈 자리가 많아 여기 저기 옮겨도 빈 자리가 넘쳐 난다면 지나치게 심할 정도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이다. 슬쩍 재 채용을 하거나 아니면 새해에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지 라는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보통의 경우는 마치 퍼즐을 정리하는 것처럼 자리 옮기기에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제서야 책장 정리의 제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 저리 옮겨보고 다시 옮겨 보고 조합을 다시 짜 보고. “도서관 사서를 했으면 잘 했을 것 같아!” 라는 자아도취도 느껴 보라.
대충 조직도를 다 그렸다면 이제 줄서기를 할 차례이다. 원래 조직이 있으면 그 안에서 줄서기는 있기 마련이다. 책이라고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책이 줄서기 할 때는 키 보다 허리둘레를 기준으로 한다. 키는 들쭉날쭉해도 좋다. 그런데 허리둘레가 들쭉날쭉하면 이게 보기 좋지 않다. 다 실험을 통해 얻은 귀한 경험의 산물이다. 같은 종류의 책이 모인 한 켠의 책을 책의 허리둘레 즉 책의 가로길이를 기준으로 작은 허리둘레가 맨 앞에 위치하고 두꺼운 허리둘레의 책이 맨 뒤에 위치한다. 자연스레 키는 무시된다. 다 정리하고 나면 딱 보기 좋은 모습으로 줄서기가 되어있다. 가끔은 허리둘레는 맞는데 키가 너무 커 그 칸에 위치하지 못하는 애들도 있다. 슬쩍 천장이 높은 집으로 보내야 한다. 거기에는 키 큰 책들 만 별도로 모여 있다. 가능하면 안정감있게 맨 밑 칸으로 이동하면 더욱 멋지다.
책장이 없고 책 수 십 권 정도만 책상 위에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의 놀이 방법이 있다. 버리고 모으고 줄 세우기의 공식은 비슷하다. 다만 조금 친밀도를 높이도록 대표선수를 뽑는 일이 다르다. 당장 볼 책, 곧 읽어야 할 책 등을 대표선수로 삼아 골라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표선수들은 책상 위 어는 한 켠을 다소곳이 점령하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도록 찜! 하는 것이다. 책이 많지 않을 때는 책을 이리저리 이동하는 재미 대신 이 대표선수를 골라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가 없다고? 그러면 권 수를 제한해보라. 딱 3권만! 혹은 딱 5권만 내 책상 위에 올라올 수 있다라고 가정해 보라. 반장 선출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소위 시장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지배자가 된 듯 상상해 보라.
책장도 정리하면서 한 편으로는 회한도, 한 편으로는 뿌듯함도 느끼게 된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적당한 단어가 없는 그 어떤 뭉클함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인생의 파편을 정리한 느낌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Summary
책장 정리는 단순한 정돈이 아니라 마음의 평정을 찾는 시간이다. 유효기간 지난 책을 버리고, 같은 주제끼리 모으며, 허리둘레 기준으로 줄 세우는 과정에서 집중과 스트레스 해소를 경험한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며, 인생의 파편을 정돈하는 뿌듯함을 얻는다.
